부모 세대에겐 헌사를, 자녀 세대에겐 응원의 메세지를 보내는 드라마 “폭싹 삭았수다”

부모 세대에겐 헌사를, 자녀 세대에겐 응원의 메세지를 보내는 드라마 “폭싹 삭았수다”

“폭싹 삭았수다(이하 폭삭)”는 “밥 먹었어?” 대신 “폭싹 봤어?”로 안부를 묻는 현상이 생길만큼 인기를 모은 넥플릭스의 화제작이다. 2025년 3월 7일에 첫 4회가 공개된 후 4회차씩 연차순으로 공개되어 2025년 3월 28일에 16부작의 공개가 끝났다. 폭싹의 누적 시청 시간은 455,200,000시간으로 역대 5위를, 누적 시청수도 27,500,000로 역대 6위를 차지했다. 공개 3주차에는 글로벌 비영어 부문에서도 1위를 차지하며 42개국에서 top 10, 6개국에선 1위를 기록했다. 소위 ‘볼만한’ 드라마를 찾던 사람들에게 그야말로3월은 폭싹으로 시작해서 폭싹으로 끝난 달이 된 셈이다. 그렇다면 폭싹의 인기 요인은 무엇일까.

모든 판타지를 충족시키는 무조건부 사랑의 메세지
폭싹을 관통하는 메세지는 ‘조건 없는 사랑’이다. 관식과 영범 혹은 심지어 애순의 엄마인 광례가 보여주는 것은 무조건 적인 사랑, 그야말로 전인생을 건 헌신적인 사랑이다. 드라마에서 구현되는 인물들의 사랑은 녹록치 않은 현실을 이끌어가는 한 줄기 구원의 빛처럼 찬란하다. 더군다가 이 조건 없는 사랑은 태어날 때부터 제주 바닷바람 같은 거센 현실을 하루하루 헤치며 살아가야할 운명을 가진 ‘당차고 요망진’ 애순의 억센 삶과 함께 어울어지며 힘있게 드라마를 끌고 간다. 그리고 그 중심엔 어릴 때부터‘영부인’을 꿈꿔온 관식이라는 캐릭터가 있다.
폭싹이 우리의 가슴을 뜨끈하게 데워주는 중심부엔 한결 같이 애순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보여주는 ‘짠한’ 관식이 있다. 거처를 정하지 못하고 할머니댁과 새살림을 차린 광례의 집을 오가며 방황하는 애순에게 매일 같이 먹을 것을 챙겨 졸졸 그녀의 뒤를 따라다니는 관식이 덕분에 애순은 마음껏 바다를 원망하고 울었을찌언정 그 원망과 미움을 가슴 속에 채워 넣어 자신의 삶을 병들도록 안으로 삯히지 않을 수 있었다. 엄마를 잃었을 때조차 함께 눈물로 국밥을 말아 건네는 관식 덕분에 애순은 엄마를 보고 싶어한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마음껏 울 수 있었다.

학씨 아저씨에게 시집을 가게 될 뻔한 애순의 애절한 고함을 듣고 곧장 배에서 뛰어내릴 수 있는 관식의 초인적인 사랑, 모두가 꿈꾸는 조건 없는 사랑, 변치 않는 사랑의 전형이다. 마치 구박덩이 고아로 태어난 해리포터에게 마법이 생기는 순간처럼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이 지지리 가난한 ‘잠녀’의 딸로 태어난 애순에게 관식이 따라붙는 순간, 시청자들의 마음엔 그들을 사랑할 명분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흙수저로 태어나 애쓰고 용써야 겨우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보통명사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슴에, 마법 같은 것, 관식이 같은 것이 ‘어쩌면’ 생길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하게 되는 달콤한 대리만족. 우리는 거기서 드라마의 마지막 회차까지 포기하지 않을 ‘엑셀’ 버튼을 누르게 된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드라마의 중심 인물들 역시 형태와 상황은 다르지만 조건 없이 주기만 하는 사랑의 전법들을 가지고 있다. 제주도 잠녀 3인방 아주머니들은 궁시렁 거리며 늘 애순의 주위를 맴돌며 위기의 순간마다 애순의 전폭적인 편이 되어준다. 애순과 관식이 금명과 은명에게 보여주는 모든 행위와 사건들 속에는 ‘나중에 돌려받겠다’는 마음이 없이 일방적으로 퍼주는, 가장 이상적인 부모의 모습이 있다. 영범과의 결혼을 깨고 허기가 진다며 돌아온 금명을 위해, “밥 있어, 밥”을 외치며 음식을 쉬지 않고 금명의 입 속으로 쑤셔 넣는 애순의 사랑은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못할 것 같던 시청자의 ‘허기감’ 마저 채워주는 듯했다. 관식과 광례에게 그런 사랑을 받고 살아낸 애순이가 여성 최초 어촌계장이 되는 설정은 조건 없는 사랑으로 ‘구원’받은 인생이 그 한사람의 인생 뿐만 아니라, 나아가 그들이 살아가는 공동체도 변화시켜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의 상징성마저 보여주는 것 같다.

반면, 드라마에는 관식의 반대편에서 ‘조건 있는 사랑’을 구현하는 캐릭터들도 등장한다. 폭삭의 최대 인기를 한몸에 받은 사랑스러운 악역 ‘학씨’ 부상길과 영범 엄마, 금명이 과외 했던 오제니의 엄마가 그런 인물들이다. 부상길은 ‘기브 앤 테이크’가 확실한 인물이다. 그가 생각하는 관계란 ‘이만큼 해주면 이만큼 받는 것’이다. 처음 애순과 결혼을 하려고 했을 때도 ‘대학과 시집 출판’이라는 조건을 충족시켜 준다면 자신은 받을 것을 받겠다(아이들을 키워주고 집안일을 하는 것)고 이야기 한다. 어촌계장 선거에서도 끊임없이 음식을 해대며 잔치를 여는 이유는 주는 만큼 떨어지는 것(득표)이 있을 것이라는 그만의 계산이 기존까지 그를 이어주던 유일한 생존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생의 후반부에 이르러 결국 혼자 남겨진 부상길은 관식에게 “너가 잘되는 게 애순이 때문이 아니라 네가 달라서”였음을 고백하며 조건 없는 사랑을 베푼 관식이 옳았음을 깨닫게 된다.

영범 엄마와 제니 엄마는 자식에게 투자한 만큼(뭔가를 주거나 한만큼) 뒤따라 오는 것(영범 엄마의 프라이드 혹은 제니 가문의면을 세워줄 학벌 등)의 공식을 기대한 인물들로, 드라마 상에서는 짧게 등장하지만 그로 인해 애순과 관식의 모습을 더욱 대조적으로 돋보이게 해준다. 물론 그 결말에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씁쓸한 기브앤 테이크 관계의 덫과 역기능이 다소 해학적으로그려진다.
어쩌면 태어나 얻는 모든 것이, 심지어 부모의 사랑조차 조건 없이 주어지지 않는 척박하고 경쟁적인 지금의 환경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 폭싹은 그래서 댓가 없이 주어진선물 같은 드라마이다. 때로는 이런 관식 같은 캐릭터가 현실에선 찾아보기 힘든 ‘판타지’이기에, 우리는 관식이를 떠나보내며 오열한다. 그것은 어린시절 우리가 그토록 우리 부모에게 기대했고, 어른이 되면서 부모가 아닌 다른 타인에게서 기대했던 그 조건 없던 사랑이 아직도 사무치게 가슴 한 켠에서 일렁거리고 있어서 일지도 모른다. 혹은 우리도 기억하지 못했던 내가 받았던 조건 없는 사랑의 일면이 잠시 떠올라 가슴 사무치게 고맙고 그리워져서 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자녀를 키워내는 누군가에게는 그런 사랑을 퍼주지 못하는 부족한 존재로서의 부모 자신의 반성과 성찰을, 그런 기특한 눈물을 주기도 할 것이다.

폭싹을 만든 김원석 감독의 말처럼 윗 세대에겐 관식의 절름거리는 그 발걸음으로 우리를 애써 키워낸 그들에 대한 찬사를, 자녀 세대에겐 그런 사랑을 받고 자라나 또 다음 세대를 위해 무조건 사랑을 내어주는 관식과 애순이 되기를 응원해 주는 드라마, ‘폭싹 삭았수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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